방산2리 평동에서 본 밭농사와 호미의 지속

평동은 논보다 밭이 중심인 마을이었고, 호미는 김매기와 수확을 잇는 핵심 도구로 남아 오늘날에도 소규모 농업의 손기억을 이어 준다.

2022-06-01

방산2리 평동의 조사 기록은 논보다 밭이 중심이었던 농업 환경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평동은 산지 마을이었고, 1950~1970년대까지 논은 적고 밭농사가 중심이었다. 한지 제작으로 쌀을 사 먹는 집이 많았다는 기억은 이 마을의 생계 구조가 단순한 벼농사 중심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논에서는 손, 밭에서는 호미

평동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논 제초에 호미를 거의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평동에서는 논을 “김맨다”가 아니라 “논맨다”고 표현했고, 초벌과 두벌 모두 손으로 풀을 뽑아 다시 논바닥에 쑤셔 넣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호미는 오히려 논의 물길을 낼 때 보조적으로 사용되었다.

반면 밭에서는 호미가 핵심이었다. 보리-콩, 보리-조 중심의 1년 2작에서 호미는 김매기와 솎아내기, 수확 보조에 이르기까지 농사일의 중심 도구로 쓰였다. 특히 여성들이 밭일을 주도했고, 품앗이와 일꾼 고용을 통해 노동력을 확보해야 했던 허순난의 사례는 호미가 단지 도구가 아니라 노동 조직의 일부였음을 드러낸다.

방산2리 평동 현지조사 사진
방산2리 평동 현지조사 사진. 밭농사 중심 마을의 현재 풍경과 조사 맥락을 연결해 준다.

풀약 이후에도 남은 호미

1970년대 이후 평동에서도 “풀약”의 확산으로 보리와 밭의 김매기에서 호미의 빈도는 줄었다. 동시에 인구 고령화와 경작지 축소가 이어졌고, 보리 재배와 이모작도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호미는 과수원 풀 제거, 텃밭 관리, 감자와 양파 수확처럼 새로운 맥락 속에서 계속 남아 있다.

조사 당시 허순난과 이웃 “사형댁”은 모두 보행기에 호미와 방석을 함께 싣고 밭으로 나갔다. 이 장면은 고령화된 농촌에서 호미가 여전히 일상 농업의 손도구로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보여준다. 외귀호미는 깊은 뿌리 제거와 찍어내기에, 양귀호미는 풀을 한꺼번에 긁어내는 데 유리하다는 사용 감각의 차이도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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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te

  • 원문: 타겟폴더/현지조사/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방산2리 평동.md
  • 이 글은 현지조사 원문을 바탕으로 핵심 맥락을 재구성한 해설형 포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