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4리로 옮겨온 기억과 호미의 변화

오현리의 농사는 돌 많은 구릉지와 이모작 체계 위에서 이뤄졌고, 제초제와 비닐멀칭 이후 호미는 논보다 밭에서 더 뚜렷한 변화를 겪었다.

2022-05-21

가야4리 현지조사는 현재의 이주단지에서 시작하지만, 실제 기억의 무대는 이전 거주지인 오현리다. 오현리는 논과 밭이 반반인 구릉지였고, 밭에는 돌이 많아 “돌이 오줌싸서 곡식이 잘 난다”는 말이 남을 정도였다. 이러한 토양 환경은 경운 방식에는 영향을 주었지만, 주민들의 기억에 따르면 호미 형태를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오현리 농사와 호미의 리듬

논은 천수답이 많아 비에 크게 의존했고, 모내기 이후 김매기는 대체로 남성의 일이었다. 첫 김매기에는 논호미를 써서 흙을 뒤집었고, 두 번째 김매기에는 손으로 남은 풀을 제거했다. 논호미의 사용은 단지 풀 제거가 아니라 흙탕물을 일으켜 논을 북돋운다는 생각과 연결되어 있었다.

밭농사에서는 호미의 비중이 훨씬 더 컸다. 오현리에서는 보리와 콩, 수수, 조가 얽힌 1년 2작 체계가 일반적이었고, 콩밭의 김매기는 풀이 나는 시점마다 이루어졌다. 이때 호미는 제초뿐 아니라 작물 관리 전반을 책임지는 도구였다. 주민들이 기억하는 오현리의 밭은 돌과 작물, 그리고 호미질의 소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야4리 현지조사 사진
가야4리 현지조사 사진. 이주 이후의 공간과 호미의 사용 변화를 함께 읽는 단서가 된다.

1970년대 이후의 전환

오현리에서 호미 사용의 큰 전환점은 1970년대 전후의 제초제 도입과 비닐멀칭 확산이다. 논에서는 제초제 이후 논호미가 사라졌고, 밭에서는 참외, 수박, 배추, 무 같은 원예작물 중심의 재배가 늘면서 호미의 사용 방식이 달라졌다. 배추처럼 잎이 크게 퍼지는 작물은 콩밭만큼 자주 김을 매지 않아도 되었고, 비닐멀칭은 제초와 보습, 보온을 동시에 해결해 노동량을 크게 줄였다.

그럼에도 호미는 남았다. 주민들은 외귀호미와 양귀호미를 모두 사용하며, 외귀호미는 찍어서 제거하는 동작에, 양귀호미는 긁어내는 동작에 더 적합하다고 기억했다. 이는 단순히 도구의 형태 차이만이 아니라 작업 방식과 손의 감각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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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te

  • 원문: 타겟폴더/현지조사/20220521 법원읍 가야4리(사본).md
  • 이 글은 현지조사 원문을 바탕으로 핵심 맥락을 재구성한 해설형 포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