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 현지조사와 호미의 기억

낙안읍성에서는 논호미와 밭호미가 함께 쓰였고, 오늘날에는 논호미가 사라진 반면 밭호미는 보조적이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

2022-06-17

낙안읍성은 한때 행정 중심지였지만 20세기 중반에는 논과 밭이 공존하는 농촌의 리듬 속에서 기억되는 공간이 되었다. 1950~1960년대 주민들에게 호미는 단순한 농기구가 아니라 논과 밭의 일을 가르는 도구이자, 특히 밭농사와 여성 노동의 감각을 불러오는 물건이었다.

논과 밭의 서로 다른 호미

낙안읍성의 논농사에서는 줄모 모내기 이후 7~8월 김매기가 중요했다. 첫 김매기는 손으로, 두 번째 김매기는 논호미로, 마지막은 다시 손으로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논호미는 밭호미보다 크고 무거웠고, 벼 밑동을 긁고 파며 흙을 뒤집는 동작 자체가 곡식을 북돋우는 일로 여겨졌다.

밭에서는 호미의 역할이 더 넓었다. 콩 파종 때 구멍을 내고, 김을 매고, 고구마와 마늘을 수확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특히 콩밭은 2~3차례 호미질이 필요했고, 작물 종류에 따라 김매기의 빈도와 강도가 달랐다. 조사 기록에서 호미는 “친구”이자 “어머니”의 노동을 떠올리게 하는 도구로 남아 있다.

낙안읍성 현지조사 사진
낙안읍성 현지조사 사진. 사진 아이템에서 같은 조사 맥락을 이어서 볼 수 있다.

변화한 농업환경과 남은 쓰임

낙안읍성에서 가장 큰 변화는 논호미의 소멸이다. 제초제가 일반화되고 모내기 방식이 변하면서 논호미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반면 밭에서는 비닐멀칭, 제초제, 모종 이식이 보편화되었음에도 호미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텃밭과 소규모 밭에서는 여전히 풀 제거와 작물 관리에 손도구로서의 호미가 중요하다.

조사자는 현재 낙안읍성에서 외날과 양날의 밭호미가 함께 쓰이는 점도 확인했다. 예전에는 외날 중심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외날, 양날, 날폭 차이 등 보다 다양한 형태가 공존한다. 이는 호미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용 환경 속에서 분화하고 적응해 온 결과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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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te

  • 원문: 타겟폴더/현지조사/20220617_전남 순천시 낙안읍성.md
  • 이 글은 현지조사 원문을 바탕으로 핵심 맥락을 재구성한 해설형 포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