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는 여성의 도구로 기억되는가
현지조사에서 호미는 특히 밭농사와 여성 노동의 기억과 함께 남아 있다. 논호미가 사라진 뒤에도 밭호미는 텃밭과 소규모 농업의 손도구로 살아 있다.
호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도구는 단순한 농기구가 아니다. 현지조사 기록을 따라가면, 호미가 특히 밭농사와 여성 노동의 감각 속에서 또렷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밭에서 호미를 든 손
낙안읍성의 조사에서 호미는 “어머니의 친구"로 기억된다. 논농사에서 첫 김매기는 남성의 몫이었지만, 밭농사는 달랐다. 콩을 파종하고, 고구마와 마늘을 수확하고, 텃밭의 풀을 관리하는 일은 주로 여성의 영역이었다. 이때 호미는 밭일을 함께하는 동반자였다.
방산2리 평동의 사례는 더 구체적이다. 허순난은 보행기에 호미와 방석을 함께 싣고 밭으로 나갔다. 이웃 “사형댁"도 마찬가지였다. 고령의 여성들이 호미를 들고 밭으로 향하는 이 장면은, 호미가 젊은 시절의 도구만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노동 도구임을 보여준다.
논호미의 소멸과 밭호미의 지속
1970년대 이후 제초제가 보급되면서 논에서 호미의 자리가 빠르게 줄었다. 낙안읍성에서 논호미는 사실상 사라졌고, 가야4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밭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비닐멀칭과 제초제가 보편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텃밭과 소규모 밭에서는 호미가 여전히 필요했다.
이 차이는 노동의 성별 분리와 연결된다. 논의 김매기가 기계화와 화학적 방법으로 대체되면서 남성의 호미 사용이 줄어든 반면, 밭의 소규모 노동은 여전히 손도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손도구를 든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품앗이 속의 호미
호미는 개인의 도구이면서도 공동체의 물건이었다. 가야4리에서는 갓바위장에서 산 호미에 구멍을 뚫어 자기 것임을 표시한 사례가 나온다. 평동에서는 품앗이가 단순한 1:1 등가교환이 아니라, 집안 노동력 구조에 따라 불균형하게 오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호미는 섞이고 다시 구분되어야 했다. 품앗이 현장에서 호미를 구별하는 일은 곧 그 마을의 노동 관계를 읽는 일이기도 했다. 여성들 사이의 품앗이에서 호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아직 충분히 기록되지 못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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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집 아이템: 낙안읍성민속대장간
- 관련 사진: 20220615_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 관련 사진: 20220429_경북 포항시 장기면 방산2리 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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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te
- 원문:
타겟폴더/현지조사/20220617_전남 순천시 낙안읍성.md,타겟폴더/현지조사/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방산2리 평동.md - 이 글은 현지조사 원문을 바탕으로 여성 노동과 호미의 관계를 재구성한 해설형 포스트이다.